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문화 유적을 찾아서 (경복궁,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문화 유적을 찾아서>

저는 2013년 10월 27일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있는 경복궁,  서대문 형무소에 갔다 왔습니다. 시간관계상 아쉽게도 종묘는 가지 못하였습니다.
 버스로 약 4시간을 달린 후, 우리는 경복궁에 도착하였습니다.

I.경복궁
 


경복궁의 내부 구조

 이 그림은 경복궁의 내부 지도 입니다. 그 중에 우리는 광화문을 보았는데 , 경복궁은 문부터 뭔가 다릅니다. 아름답고 장엄합니다. 광화문 사진인데, 햇빛이 비추어 져서 더욱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듯 합니다.
  1.경복궁 문 중 내가 최고야! 광화문

경복궁의 남문, 광화문 (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중 가장 처음 지어진 문입니다.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8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였지만, 광화문의 전통적인 미를 잃어버린 채 불완전 복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전통의 미를 다시 찾은 광화문을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2.내가 경복궁의 중심이다! 근정전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政殿)입니다. 근정전은 조하(조회의식)을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이라고 하는데, 전면에는 중요한 행사를 거행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습니다.
 근정전은 부지런할 勤, 정사 政, 대궐 殿으로 담겨있는 뜻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며 잘 다스려진다'이라고 하니다. 큰 행사 때에 사용되어 졌던 근정전은 왕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다고도 합니다. <사진 1>에 나와 있듯, 조선의 대왕이 앉던 자리를 어좌라고 하는데 근정전의 어좌 뒤에는 '일월오봉도, 日月五峰圖'라고 하는데 이는 왕을 상징하는 해, 중전을 상징하는 달과 다섯 봉우리의 산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림 1>

그리고 천장에는 '칠조룡'이라는 조각품이 있는데 황금색입니다. 이것은 왕을 상징합니다.
<그림 2>
또, 이곳은 사극에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림 3>, 품계석이 이 나옵니다. 저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적이 없지만 친구들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품계석 앞에서 각자의 계급에 따라 선다고 하였습니다.
<그림 3>

이것을 아주 헷갈려 하던데, 여러분들은 <그림 4>의 용도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비상탈출구? 냄비뚜껑? 듣도 보도 못한 용도더라고요. 바로 천막을 설치하기 위한 고리였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림 4>

  3. 왕을 품은 전각, 사정전

 


이곳은 사정전(思政殿)입니다. 이곳은 왕이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평상시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고 신하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입니다. 주연을 즐기고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보시다시피 사정전 앞에는 사정문이라는 문이 있는데, 정도전이 지은 것입니다.'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혹시 주초위왕, 즉 조광조 사건을 아십니까? 조광조는 원래 중종의 신임을 많이 받는, 중종의 총애를 받은 엄친아 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너무 싫어하는 다른 무리에 의해, 그리고 희빈 홍씨에 의해 심문을 당했다는데, 바로 이곳  사정전의 뜰에서 당했다고 합니다.


  4. 공부를 열심히..수정전

이곳은 수정전입니다. 수정전은 원래 집현전이였고, 우리나라 문자 한글이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세종 대왕의 오른팔, 왼팔들인 학사 신숙주, 성삼문 등이 연구를 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궐내각사들이 철거되어 수정전만이 남아있다는 슬픈 사실이 있기도 합니다.

  5. 왕이 주무시던 곳, 강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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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강녕하시옵니까?'
이곳은 왕의 침전, 강녕전(康寧殿)입니다. 왕의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기도 하고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신하들을 은밀히 불러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기 때문입니다.
 강녕전은 세종 때 임금이 오래 머물 것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고치다가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번이나 화재를 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20년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된다며 헐리고,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6.중전마마 납시오! 교태전


이곳은 중전의 침전입니다. 강녕전하고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전의 고유 업무인 내명부(內命婦)를 다스리는 일을 비롯해 궁궐 내의 여성문제를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곳은 특히 중전의 침소여서 그런지 가장 아름답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곳 교태전의 교태를 애교라는 뜻의 교태(嬌態)를 생각하는데, 그것은 중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교태전의 교태는 (交泰)입니다. 우리 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의 양의 기운과 여자의 음의 기운이 합쳐지는데 그 현상을 교태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뭔가 다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미산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이곳입니다. 이곳은 아미산인데, 다양한 화초가 심겨저 있고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굴뚝이 세워져 있습니다.


  7. 내가 조선의 국모니라! 건청궁

건청궁은 슬프지만 명성 황후가 시해된 곳입니다. 고종이 내탕금(왕의 사비)를 들여 만든 건물입니다. 조선 최초의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했지만, 고종의 아관파천 후 다시는 건청궁으로 가지 않았고, 1909년 완전히 헐리게 됩니다.
그래도 다시 복원되어 2006년, 건청궁은 다시 빛을 보게 됩니다.

  8. 아름다운 정원, 향원정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인공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입니다. 아름답지요? 옛날에는 이 다리 대신 다른 다리로 건넜는데 그 다리가 건청궁에 있었다고 합니다.


II.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4년 후 서대문 형무소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되었습니다.

이렇게 수감실에는 독립투사들이 있었습니다.


비상시에는 패통이라는 것으로 했는데, 원리가 참 신기합니다.

만들기 어렵네요.
참 과학적이지 않습니까?








이 밑의 그림은 재소자의 고무신인데, 아직 온전한 것을 보니 신기합니다. 구멍이 뚫려 있으니 기분이 찡해지는 군요.










 








이 사진은 서대문 형무소의 구조를 말합니다. 슬프지만 사형장도 있고, 아주 잔인하게 손톱 밑을 찌르는 것도 있고, 심지어는 앉지 못하게 벽장이라는 고문도구도 있습니다.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지옥에서도 이렇게는 안할 것 같은데...
상자에다가 못을 다 박아 놓고는 사람을 넣어서 흔들면 사람이 찔리는데 그걸로 사람을 고통을 줄려고 했다고 합니다. ㅠㅠㅠㅠ


독립 운동을 위해 태극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고 일손도 별로 없을 때 이용한 태극기 도장입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분들의 혼이 담겨 있는지 태극기에 색깔이 희미하게나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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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장 앞에는 미루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에도 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심었는데 사형장 밖에는 정상적인데 안에는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울음소리 비명소리를 들어서였을까요? 원혼이 담겨져 있을까요 .....


<사형장 안의 미루나무-잘 자라지 못하였다>
<사형장 밖의 미루나무 - 정상적이다>


다음에 갔을 때는 명복을 다시 빌어드려야 겠습니다..
이상으로 iEn의 서울 답사기를 마치겠습니다.

댓글 3개:

  1. 진짜 잘적으셨네요!
    마지막에 독립운동가들의 진심이 저한테도 전해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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